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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

김용상 2017. 4. 8. 20:27

 

특별설교

특별설교 - 배 진 태 담임목사

제목   1.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회 첫날
말씀   막11:12-19 DATE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회 첫날                        

(막 11:12)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막 11: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막 11:14)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막 11:15) 저희가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막 11:16)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치 아니하시고  (막 11: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막 11: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멸할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기이히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막 11:19) 매양 저물매 저희가 성밖으로 나가더라  (막11:12-19)

                           
고난 주간 - 월요일

어떤 사람이 병원에서 진단을 받기를 이제 남은 생애가 일주일밖에 남지를 않았다고 들었다면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떠하였을까요? 그 사람은 자신의 생애에 남은 일주일을 과연 무엇을 하면서 보내겠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마지막 일주일을 이제 더듬어 살펴보면서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가 무엇인지 깨닫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는 어제 주일날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성에 들어 가셨습니다. 수많은 예루살렘 사람들이 예수님의 들어오심을 환영했고 축하였습니다. 그들은 종려나무가지를 꺾어서 흔들었으며 자신들의 겉옷을 길에 펴면서 주님을 환영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날을 종려주일이라고 부른다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로 십자가로 더 가까이 다가가시는 순종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도 믿음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 더욱 귀한 충성을 다하는 좋은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원해 봅니다.

오늘 본문은 어제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주님께서 그 길로 곧바로 성전에 가셔서 성전의 형편을 살펴 본 뒤 성을 빠져 나와서 평소에 들러서 쉬고 거하셨던 가장 편안한 집인 베다니 나사로의 집으로 가신 것이 아닌가? 라고 추측을 해봅니다. 왜냐하면 오늘 11절 말씀에 보시면 때가 저물매 12제자들을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셨다고 기록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성에서 베다니 마을까지는 대략 3.5km정도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성에서 쉽게 다닐 수가 있는 거리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어제 주일에 일이었습니다.

오늘 월요일은 주님께서 아침 일찍 베다니를 떠나 다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런데 이른 아침인지라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함께 시장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입사귀가 무성한 한 무화과나무에 다가가셔서 먹을 것이 있을까 하여 찾았지만 잎사귀만 무성했지 먹을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무화과의 때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라는 저주의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입니다.

본래 무화과는 3월말에 싹이 나기 시작하여 5,6월에 익고 좀 늦은 무화과는 8-10월이면 딸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계절적으로 유월절이 가까운 4월경이었기에 사실은 열매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무화과를 저주 하셨다는 것은 잎만 무성하고 실제 열매는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속였고 현혹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이 말은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함을 받은 이스라엘이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고 하나님을 기만하려고 하는 그런 모습을  열매 없는 무화과 비유하여 저주를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서는 주님께서 곧 바로 성전에 들어가셨는데 거기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는데 그것은 성전 안에 돈 바꾸는 자들과 비둘기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두러 엎으시고 다 쫓아 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서는 말씀하시길 "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그런데 너희들이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도다" 라고 하시면서 거룩한 분노를 나타내었다는 것입니다.

왜 성전에서 이런 장사가 가능했나? 첫째 짐승을 파는 자들은 순례 객  들이 멀리서 짐승을 가지고 오면 다 퇴짜를 놓았다. 그래서 성전에서 살 수 밖에 없었다. 둘째 성전세를 내었는데 이는 성전에서만 통용되는 화폐를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가는 다 손해만 보고 가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 강도의 굴혈을 만듬.

(교훈)

1. 오늘 주님은 먼저 성전을 청결케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깨끗
  하고 청결한 신앙생활을 하여야 한다. 무엇으로 행실을 깨끗하게 하겠습니까? –
  말씀을 읽음. 성전을 거룩하게 여겨야 한다.

2. 열매있는 신앙생활을 하자. 믿음의 결과가 중요하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열매를 거둘 수 있는 신앙적인 결단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자

 

특별설교
특별설교 - 배 진 태 담임목사
제목   2.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회 둘째 날
말씀   눅20:1-18 DATE  

고난주간 특별 새벽 기도회 둘째 날                      

(눅 20:1)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눅 20:2)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세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눅 20:3)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눅 20:4)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눅 20:5)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눅 20:6) 만일 사람에게로서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저희가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  (눅 20:7) 대답하되 어디로서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  (눅 20: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눅 20:9)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눅 20:10)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눅 20:11)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심히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눅 20:12) 다시 세번째 종을 보내니 이도 상하게 하고 내어 쫓은지라  (눅 20:13) 포도원 주인이 가로되 어찌할꼬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혹 그는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눅 20:14)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업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눅 20:15) 포도원 밖에 내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눅 20:16)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가로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눅 20:17)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뇨  (눅 20:18)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눅20:1-18)

                 
고난주간 - 화요일

입만 무성하고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주님께서 저주 하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상징적인 Message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에 성전에 들어가서 물건을 파는 자들과 돈을 바꾸는 자들을 내어쫓으시며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하였거늘 너희가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다"하시면서 거룩한 분노를 나타내었던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은 왜 고난주간 첫날에 성전을 청결하게 하셨을까? 과연! 그 의도는 어디에 있을까?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주님은 마지막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믿음의 환경 즉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것은 많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이 고난주간을 살면서 우리들도 나의 믿음의 자리를 늘 청결하게 하고 반듯하게 하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루는" 이라면서 시작을 합니다. 즉 이것은 새로운 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화요일은 고난주간 중에서 주님께서 가장 많은 말씀을 하시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기에 사실은 매우 피곤한 날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하신 일은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과 그 백성들이 잘못 알고 있는 신앙적인 문제를 바르게 일깨워 주는 매우 중요한 날입니다.

대략 그 내용을 살펴보면
 1) 예수님의 권위에 관한 문제
 2) 세금을 어떻게 바치는가?
 3) 부활에 관한 문제
 4) 종말에 대한 문제

실로 많은 부분에서 주님과 대화를 하였고 주님은 그들이 잘못 알고 있는 그 부분에 대하여 지적하고 바르게 깨우쳐 주는 그런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분명하고 성실하고 진지했는지 20:26절에 보시면 저희가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라고 하였음을 봅니다.

⊙ 그들이 물은 것은 권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나사렛에서 온 예수라는 젊은이가 성전에 들어와 아무도 쉽게하지 못하던 그 장사하는 사람들을 다 내어쫓았으니 사두개인, 서기관을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이 매우 당황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이 묻기를 당신이 뭔데 이렇게 행하느냐? 라고 묻습니다. 그 질문에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라고 되묻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늘로서 라고 하면 요1:29절에 기록된 말씀인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라는 말씀을 왜 아니 믿느냐? 라고 할 것이고 인간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 하면 그를 믿고 세례를 받고 따랐던 그 많은 백성들을 무시하는 것이 되니 그들이 모르겠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여기에 예수님도 나도 대답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 - 그들은 자신들을 비유한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꾀를 낸 것이다.

⊙ 세금을 바치는 것이 좋은가? 아니 좋은가? (당시 인두세-14-65(남자), 12-65(여자가 감당하던 세금) 극렬분자의 입장에서-내지 말자, 하면 반역자요. 세금을 내자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실망할 것이기에 질문. 동전의 그림을 보이며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드리라" 가이사의 통치를 받으니 가이사의 필요를 채워 주고 하나님을 섬기니 하나님에 대한 임무를 다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 부활이 있다 - 바리새인
  부활이 없다 - 사두개인(현실적인 신앙인)
  그러나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하늘나라에서 변화된 모습입니다.

⊙ 종말의 징조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가 싹을 피우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알지 않느냐? 그러므로 종말도 징조를 보인다.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과 여러 가지 징조가 있으나 그러나 마지막 때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한다. 부지 중에 주님의 재림이 있다.

(교훈)
1. 우리의 신앙생활이 너무 편협하지 않는가?
  즉 자기 중심적이 않는가? 나의 생각을 고집하고 나의 믿음을 고집하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여야 한다. 말씀 중심의 삶이 필요하다.

2. 마지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되자
  언제 어느 때에 주님이 오실 지는 아무도 모른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 맡기고 우리는 주어진 믿음의 삶에 최선을 다하자. 마25장의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믿음을 준비하자.

 

특별설교
특별설교 - 배 진 태 담임목사
제목   3.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회 셋째 날
말씀   눅22:1-6 DATE  

고난 주간 특별 새벽기도회 셋째 날                        

(눅 22:1)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가까우매  (눅 22:2)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책으로 죽일꼬 연구하니 이는 저희가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  (눅 22:3)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눅 22:4)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책을 의논하매  (눅 22:5) 저희가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눅 22:6)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눅22:1-6)

                             
고난주간 - 수요일

주님께서는 어제 화요일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세인들과 대화를 하시면서 그들이 잘못 알고 있는 신앙적인 내용들 즉 부활에 관한 문제와 종말에 관한 문제 그리고 그들이 주님을 궁지에 빠뜨릴 목적으로 질문한 세금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분명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고 깨우쳐 주었던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화요일에 있었던 주님의 그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우리는 너무나도 자기 중심적인 판단을 하지 않는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긴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자기 중심적인 판단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잘못을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 오늘 수요일은 주님의 마지막 일주일 사역 중에서 그 행적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수요일에 관한 해당 기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이 날을 부르길 "침묵의 날"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주님에 관한 아무런 기록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주님은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 계시면서 하루를 조용히 보내셨을 것이라 추측을 합니다.

강원도에 "예수원"이라는 수양관이 있습니다. 이 수양관은 영국 성공회 소속의 신부인 토레이 신부님이 세워서 기도와 말씀묵상과 섬김을 통한 믿음의 가르치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수양관의 하루 일정표에 보면 "침묵의 시간"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 침묵의 시간에는 절대 아무 말도 해서는 안됩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말을 절제하는 시간입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말들을 하지 않습니까? 하루를 살면서 온갖 말을 듣고 많은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때는 워낙 말을 많이 해서 입이 아플 정도이지 않습니까? 이럴 땐 가끔은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을 쉬어 보아야 합니다. 사람들로부터 들려오는 말은 듣지도 말아야 합니다. 오로지 한 곳에서만 들리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우리는 다른 어떤 말이라도 듣지 않는 그런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출14장에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서 추격해 오는 바로의 군대 때문에 죽게 되었을 때 얼마나 많은 말이 모세에게 들려 왔는지 모릅니다. 그때 모세는 그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에 대답하기보다는 오로지 하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늘을 쳐다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가끔은 하늘을 쳐다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실 너무 낳은 말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3장은 특히 혀의 위험성과 말을 조심 할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수요일 예수님께서 어떤 가르침을 주었는지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우리 주님께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심으로 더 귀한 가르침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
말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말이 없어도 함께 하시기에 그 가르침은 매우 큰 것입니다. 우리는 요13:1절에서 주님의 애틋한 마음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유월절전에 예수가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된 줄로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주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사람들은 뒤로 한 채 오히려 예수를 잡아죽일 방책을 연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침묵하시는데 사람들은 오히려 쓸데없는 말, 오히려 생명을 빼앗을 말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최대 명절이라고 하는 유월절이 가까이 다가옵니다. 유월절은 축제의 날이다. 유월절은 기쁨의 날입니다. 백성들은 이미 마음이 들떠있다. 온통 거리는 분주하고 떠들 석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월절 희생양으로 돌아가실 주님은 오히려 조용하시다.  이런 백성들의 마음을 읽으신 주님은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그래서 더 말없이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하루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말을 하고 있는가? 말을 절제해 보자. 필요한 말만 하자. 생명을 살리는 말을 해 보자. 용기를 주는 말을 하자. 오늘 수요일 주님에게서는 침묵의 날이다.

(교훈)
1. 믿음의 형편을 살펴보자
   - 너무 말만 앞세우지 않았는가? 너무 바쁘게 살면서 많은 말을 하였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지는 않았는가?

2. 말을 절제하자
  - 때로는 침묵해 보자. 불필요한 말을 하지 말자.

 

특별설교
특별설교 - 배 진 태 담임목사
제목   4.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회 넷째 날
말씀   마26:17-30 DATE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회 넷째 날


(마 26:17)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마 26:18)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마 26:19)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마 26: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 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마 26:21) 저희가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마 26:22) 저희가 심히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  (마 26:23)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마 26:24)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뻔 하였느니라  (마 26: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가로되 랍비여 내니이까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마 26:26)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마 26:27)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마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 26: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 26:30)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  (마26:17-30)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요 13: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요 13: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요 13:5)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요 13: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요 13: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요 13:8)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요 13:9)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 뿐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요 13: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요 13: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요13:1-11)
                 

고난주간 - 목요일

우리는 어제 주님께서 침묵의 날을 보내셨음을 성경에서 보았습니다. 온갖 많은 말들 속에서도 주님은 오히려 하나님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기를 원해서 별다른 행적을 남기지 않으셨는데 우리는 그래서 이 날을 침묵의 날이라 부른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오늘은 고난 주간에서도 참 의미 있는 아주 중요한 날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베드로의 부인을 말씀하시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시는 일정이 오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22장에서는 주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식사를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성 안 에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따라가 선생님께서 네게 하시는 말씀이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고 하십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유월절 음식을 먹을 객실이 어디냐? 물어 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집에서 유월절을 지내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에 자신의 집에 공간을 내어주는데 이 곳이 바로 마가 요한의 다락방임을 우리는 사도행전1장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실 때 나귀를 타고 오셨기에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셨음을 아시고 제자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주가 쓰시겠다 하라!

오늘 본문에서는 주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드시면서 떡을 가지고 축복하신 뒤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잔을 가지시고 축복하신 뒤 "이것을 다 마시라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한 공동체임을 확인하는 아주 귀한 예식입니다. 성찬식은 우리에게 매우 귀중한 영적인 체험을 주십니다. 이것을 행할 때 마다 주님을 묵상하고 기념하고 고난에 동참하여야 합니다. 카토릭-화체설  장로교-영적 기념설(쯔빙글리, 칼빈, 루터)  

그리고 나서 주님은 요한복음13장에 기록된 것처럼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 친히 수건을 허리에 동여매시고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기셨다.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섬기는 모습은 정말 귀한 모습입니다. 이 귀한 섬김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더욱 형제를 사랑하고 섬기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모든 절차를 마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찬미를 하면서 감람원으로 가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마26에 보시면 그 다음에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버릴 것이라 말씀을 하십니다.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이 주님의 말씀에 베드로는 마26:33 다 버릴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습니다. 35절에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저주하며 맹세하노니 나는 그를 결코 모르노라 눅22:61절에는 주님께서 베드로 보시니.... 베드로의 통곡. 자신을 살펴 보라. 믿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 환경에 따라 믿음이 흔들이지 않는가?

(교훈)
1. 주님은 침착하셨다. 마지막을 정리 하셨다.
   - 분주하지 않았다. 제자들을 다독거리시고 기도하러 가셨다.

2. 섬김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 발을 씻김과 자신을 주는 모습(성찬식)
  -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특별설교
특별설교 - 배 진 태 담임목사
제목   5.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회 다섯째 날
말씀   눅23:26-49 DATE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회 다섯째 날

(눅 23:26) 저희가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로서 오는 것을 잡아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좇게 하더라  (눅 23: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 오는지라  (눅 23: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 23:29)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눅 23:30)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눅 23: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눅 23:32)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눅 23: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눅 23: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쌔  (눅 23: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찌어다 하고  (눅 23:36) 군병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포도주를 주며  (눅 23:37) 가로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눅 23:38)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눅 23: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눅 23: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눅 23:41)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눅 23:42)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눅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눅 23:44) 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  (눅 23:45)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눅 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눅 23:47)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눅 23:48)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두드리며 돌아가고  (눅 23:49) 예수의 아는 자들과 및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눅23:26-49)


고난주간 - 금요일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 음식을 나누어 드셨던 주님. 식사를 하시다가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말씀하시되 이는 "너희를 위하여 찢기는 나의 몸이라" 받으라! 먹으라! 말씀 하셨고 또 잔을 가지시고 축사하시되 이는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라", 하시면서 주셨고 제자들에게 이것을 먹고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하신 주님의 모습을 어제 목요일 사건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서는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겨 주시며 친히 섬김의 모습을 보여 주셨던 주님. 그 주님의 마지막은 더욱 아름다운 추억으로 그들에게 남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윽고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찬미하면서 감람산으로 올라가셨음을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보았습니다.

그 한 밤중에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으로 가신 주님께서 즉시로 제자들과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십자가라는 큰 일을 앞에 두고 기도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앞둔 주님께서 하신 기도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옵소서 그러나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주님의 간절한 기도를 하늘에서 천사가 나타나 힘을 도왔는데 얼마나 간절히 애쓰고 기도를 하였는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더라 라고 성경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정말 죽기를 다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시간 제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26장은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이르신 주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따로 불러 내시사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며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는 주님께서는 조금 더 나아가사 기도를 하시고 돌아오니 그들이 잠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 번을 그렇게 하였지만 역시 잠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을 보신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주님이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가 한시도 깨어서 기도할 수 없더냐? 하시지 않습니까?

목사도 교회를 섬기다 보면 교회 안에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저 정도 오랜 세월 동안 신앙생활을 하신 분이라면 정말 헌신하고 충성할텐데 하고 결과를 기다려 보면 그 결과는 정말 마음이 아플 때가 더러 있습니다. 이런 한심한 제자들을 보신 주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그 뿐입니까? 막상 주님께서 잡히시니까? 나 살기 위해서 다 도망가고 없지 않았습니까?

결국 주님은 그 밤에 잡히셔서 대제사장 가야바의 장인이요, 직전에 대제사장이었던 안나스의 집으로,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분봉왕 헤롯에게로 또 총독 빌라도에게로 여기 저기로 끌려 다니시고 심문을 받으시고 침 뱉음을 당하시고 고문을 받으셨습니다. 결국 빌라도에게서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하는 결정을 받고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올라가신 것이 바로 오늘 아침까지 연속된 사건입니다.

우리 시간으로는 오전 9시경에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는 정오에 온 땅에 어둠이 임하고 3시경에 운명을 하셨습니다. 그때는 아직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이라 그들이 죄인의 시체를 밖에 두지 않는 관습 때문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무덤에 장사가 됩니다.

이때가 사실은 요일로는 금요일이지만 유대인들의 날짜 계산으로는 아직 목요일 오후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해가 저물어야 하루가 시작하고 다음 날 해가 질 때가 하루가 끝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해가 지면 금요일 오후 안식일이 시작이 됩니다.

주님께서 서둘러 십자가에서 내려져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무덤에 장사 지낸 바가 됩니다. 그런데 모든 광경을 곁에서 지켜보던 그 백부장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진정 의인이었도다"(막15:39) 즉 죄가 없는 사람이었도다 라고 고백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지고 하나님의 비밀이 온전히 드러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구속이 완성이 되고 하나님께 나아갈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임을 가르쳐 주는 귀한 사건인 것입니다.

(교훈)
1. 완전한 희생
- 겉옷까지 그리고 남은 피 한 방울까지 우리들을 위해서 다 쏟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무엇을 자랑하겠습니까? 이 귀한 주님의 고귀한 희생을 가슴에 담고 주님의 사랑을 자랑하여야 하겠습니다.

2. 끝까지 사랑하심.
- 한편의 강도에게까지 긍휼을 베푸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한 영혼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새겨 봅니다.

 

특별설교
특별설교 - 배 진 태 담임목사
제목   6.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회 여섯째 날
말씀   마27:57-66 DATE  

고난주간 특별 새벽 기도회

(마 27:57)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마 27:58)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주라 분부하거늘 (마 27:59)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마 27:60) 바위 속에 판 자기 새무덤에 넣어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마 27:61)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마 27:62) 그 이튿날은 예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가로되  (마 27:63) 주여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마 27:64) 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 하나이다 하니  (마 27:65)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에게 파숫군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하라 하거늘  (마 27:66) 저희가 파숫군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하니라  (마27:57-66)
 
                                   
고난주간 - 토요일

주님께서는 빌라도의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채찍에 맞으면서도 주님께서는 골고다의 언덕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주님께서 홀로 그 죄를 감당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서 하신 일곱 마디의 말씀을 우리는 기억해 보아야 합니다.

 1)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눅23:34)
 2)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다(요19:26)
 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27:46)
 5) 내가 목이 마르다(요19:28)
 6) 다 이루었다(요19:30)
 7) 아버지여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눅23:46)

십자가에서 주님은 이런 일곱 마디의 말씀을 하시고는 운명하셨습니다. 그리고서는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서둘러 십자가에서 내려져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무덤에 장사지낸바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요셉을 가르쳐 부자라 하였고, 막15:43절에서는 "존귀한 공 회원"이라 하였고, 눅23:50절에서는 "성품이 선하고 의롭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어쨋던 그는 유대인 지도자중 한 사람인데 빌리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내어 달라고 한 것은 대단한 용기를 가진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이것은 그가 예수님을 사랑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출20:8절에 보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십계명중 4번째 말씀으로서 하나님께서 이 땅의 창조사역을 6일 동안에 마치시고 제 7일째 되는 날은 쉬셨기 때문에 이날을 안식일라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창조사역을 감당하시느라 피곤해서 쉬신 것이 아니고 이 하나님의 쉼은 완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날은 하나님의 날이요, 주님의 날입니다. 나를 위하여 즐기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구별된 날입니다. 구약에서는 이 안식일을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오후까지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신약의 축복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안식일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안식일의 완성인 주님 부활의 날 바로 이 주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키는 것이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이라는 말보다는 주일, 주님의 날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마27:63절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빌라도에게 나아와서 요청하기를 저 유혹하던 저 사람이 살았을 때 사흘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하였는데 혹시 다시 살아나면 이후에 유혹이 더 커지니까? 무덤을 지켜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때 빌라도는 너희에게 군사가 있으니 너희가 알아서 지켜라 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서 파수꾼도 세우고 인봉도 하였습니다.

혹시 제자들이 시체를 도적질해 가고서 부활했다고 할까 봐 미리 준비를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결코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이단들의 주장
1) 기절설 - 잠시 기절했다.
2) 도적설(마28:13) - 제자들이 훔쳐 갔다.
3) 가현설 - 죽은 것은 육신이 아니고 영혼이다.

그러나 어느 것도 신뢰할 수 없는 헛된 주장들인 것입니다. 주님은 완전히 죽으셨습니다. 물과 피를 쏟으셨습니다. 실제로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 쇼크사로 죽은 사람인 경우는 물과 피를 쏟는다고 합니다. 주님은 완전히 죽으셨고 무덤에 갇히셨습니다.

무덤에 갇히신 주님은 부활을 준비하셨고 절망에 빠진 제자들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잠시 무덤에서 머물러 쉬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토요일은 주일을 준비하는 예비일이요, 주님의 부활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귀한 날이 바로 토요일입니다. 오늘 토요일을 지나면서 우리는 내일 새벽 승리하실 주님을 기다리고 사모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훈)
1. 때를 기다려야 한다.
  - 전도서 3장에 천하 범사에 기한이 있고 때가 있다.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2.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방법을 뛰어 넘는다
  - 사람들이 파수꾼을 세우고 인봉을 붙인들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자.


 

 

출처 : 임마누엘 카페
글쓴이 : 루디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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